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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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 집사 (임기환 지파 / 오수 셀)

1. 말씀: 누가복음 2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2. 묵상-I

) 평화

말씀을 묵상할 때 매번 부딪히는 문제는 성경 단어의 본래 뜻을 한글 성경만으로는 알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해서 가끔은 인터넷에서 원문을 찾고 본래 의미를 더듬어 실마리를 얻고는 합니다.

평화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신약 원문) 단어는 ερήνη(에이레네)’라고 하네요. 그리스어에서 해당 단어의 뜻은 결합하다, 회복하다, 완성하다등의 의미를 갖는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흔히 마주치는 이 단어의 실제 의미가 우리말 평화와는 사뭇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이번 QT 준비하면서 처음 알았습니다.

)

내친김에, ‘를 찾아 보았습니다. ‘‘ἁμαρτα(하마르티아)’라고 하는군요. 그리스어의 뜻은 과녁에서 어긋남’, ‘(온전한 짝을 이루는) 부분으로서의 짝을 찾지 못하다등의 뜻이 있다고 합니다.

) 구원, 구속

어원으로 유추할 때, “평화의 상태와 의 상태는 명확해 보입니다. 우리 안에 심어진 하나님의 씨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가 결합된 상태가 평화의 상태이고, 이 결합이 깨어진 상태가 곧 의 상태인 것이지요.

결합의 상태란 곧 나와 하나님 간의 소통, 대화로 해석됩니다.

소통이 단절될 때 우리는 온갖 육욕에 휩싸여 헤어나지 못합니다. , 우리가 말하는 죄(육욕)는 진짜 죄(소통 단절)의 산물일 뿐, 그 자체가 죄의 본질은 아니며, 일상의 죄(육욕)에서 벗어나는 것은 오직 하나님과의 소통을/관계를 회복(평화)함으로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이해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을 다시 이어줌으로써 우리 안에 평화를 회복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오셨고, 이 평화의 상태에서 우리는 우리 안의 하나님과 일상의 대화를 나누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곧 구원”, “구속의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됩니다.

 

3. 묵상-II

저는(우리는) 끊임없이 세상존재에 관해 생각하지만, 제 생각들은 그 자체로도 항상 부정확하고, 세상의 자극과 내 안의 감정에 휘감겨 항상 방향을 잃고 표류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의 숙제는, 제 생각들을 하나님 앞에 얘기하고 하나님의 생각을 들으면서 저의 잃어버린 좌표를 지속적으로 회복해 가는 훈련을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제 삶을 당신 보시기에 바른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문제는, 언제 어떻게 하나님께 아뢰며 그분의 말씀 앞에 순종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를 마치 아바타처럼 만드셔서 모든 순간 모든 결정에 개입하며 당신의 뜻을 알려주신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지만, 제가 경험한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명징하게 당신의 뜻을 드러내지 않으시기 때문에 저는 제 나름의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저는 필요한 지식들을 세상 속에서 모으고 분석하면서 저의 판단력을 예리하게 유지하고 저의 뜻을 스스로 세워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제 고집은 드세지고 스스로를 옳다 하면서 하늘을 바라보고 묻는 시간이 점점 줄어듭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 마저 잊어버리고 살게 됩니다. 매번 똑같은 실수, 실패를 되풀이 합니다.

교회가 강조하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소통이 언제쯤 제 삶을 가리키는 언어가 될까요.

언제쯤이면, 제 삶의 매순간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모습으로 바뀔까요.

무턱대고 자신을 내려놓고 하늘만 바라보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는 동행의 모습이 아닐진대, 자신의 노력과 하나님 앞에서의 순종을 조화시키는 것은 제게는 너무나 아득한 이상인 듯 싶습니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QT를 준비하면서, 다시금 당신을 떠올릴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헤아리지 못하더라도, 눈앞의 일들 만큼은 철저하게 파헤치고 치열하게 고민해서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질문지를 준비해 올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제게 주신 인생, 제게 주신 사랑의 숙제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는,
제대로는 못했지만 그런대로 애 쓴 것은 아노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아들이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깨닫지 못하는 순간에도,

제가 그릇된 곳에서 방황하는 순간에도,

저를 놓지 않으시고,

오래도록 참고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