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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2:5-11 ‘십자가, 예수님의 겸손’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권면합니다.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 도시로서 시민권과 신분,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던 사회였습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교회 역시 다툼과 허영의 위험, 내부적인 갈등의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공동체의 연합을 위해 ‘겸손한 마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겸손을 미덕이나 성격의 문제로 다루지 않습니다. “겸손하라”는 명령을 하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겸손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태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깊이 바라볼 때 흘러나오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의 본체
본문은 예수님을 “근본 하나님의 본체”라고 선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셨습니다. 그 영광과 권위는 본래 그분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동등됨을 ‘붙들어야 할 권리’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이 장면은 창세기의 아담 사건과 대조됩니다. 인류의 첫 사람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욕망을 따라 동등됨을 취하려 했습니다. 그 결과는 타락과 저주였습니다. 인간의 죄의 하나님 자리에 서려는 시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반대의 길을 가셨습니다. 하나님이시면서도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인간은 올라가려 했지만, 그리스도는 내려오셨습니다. 여기서부터 복음의 역전이 시작됩니다.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 자기를 비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자기를 비웠다’는 말은 하나님 되심을 포기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분은 여전히 참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권리와 영광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권리의 유보이며,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선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체’에서 ‘종의 형체’로의 전환은 단순한 신분 변화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 방식의 변화입니다. 지배의 방식이 아니라 섬김의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성육신은 하나님의 겸손입니다. 창조주께서 피조물의 연약함을 입으셨고, 영광의 주께서 고난의 길로 들어오셨습니다. 이 낮아짐은 십자가를 향한 의도된 하강의 길이었습니다. 죄인을 대신하기 위한 가장 겸손한 ‘자기 내어줌’이었습니다.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3. 십자가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단순한 겸손한 태도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끝은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는 로마의 잔인한 처형 도구이면서 동시에 구약 성경이 말하는 ‘저주의 자리’입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 저주의 자리에 서셨습니다. 그분이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그분이 버림받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교환이 복음의 중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려 했던 자리에서 그리스도는 저주를 짊어지셨습니다. 이 사건이 우리의 신분을 바꾸었습니다. 복음 위에서 겸손은 강요된 윤리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열매로 나타납니다.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