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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4:1-6 “사마리아로 가자!”
1.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4절
사마리아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 않는 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만 한다는 의미입니다. 유대에서 갈릴리로 갈 때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가면 지름길이라 3일이지만, 돌아서 가면 6일 정도가 걸립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6일이 걸려도 돌아서 갑니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 땅이고 같은 민족이지만, 그들을 이방인으로 개처럼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신앙과 혈통의 순수성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점령할 때 사마리아에 앗수르 사람들을 이주시켜서 땅도 더럽혔고 심지어 혈통도 섞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섬기는 우상숭배가 사마리아 땅에 가득했던 것입니다(왕하 17:24).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사마리아는 수치의 땅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이곳을 가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동네에 이르시고 우물가에 앉게 됩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통과 하는 행동은 유대인과 바리새인들의 편견을 깨는 행동이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수가에 사는 한 여인을 향해서 오신 것입니다. 니고데모처럼 거듭나야 하는 한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시쯤 먼저 도착해서 여인을 기다리고 만났습니다.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만나려고 가신 것입니다. 정오의 시간은 너무 뜨거워서 절대로 우물가에 누구도 오지 않습니다. 이 여자는 아무도 오지 않은 이 시간에 올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연을 아시기에 그 여인을 만나려고 한치의 오차 없이 그 시간에 가셔서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십니다. 여자는 놀라서 묻습니다.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시냐는 것입니다. 물이 필요해서 그랬을까요? 의도적으로 한 영혼을 거듭나게 하려고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대화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냥 놔 두면 멸망의 길로 가니까 구원해서 영생을 주려고 물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찾아간 것이 우연이 아닌 것처럼 예수님이 우리에게 찾아 온 것이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와 예수님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런 일이 왜 우리한테 일어날까요? 그런 일이 안 일어났으면 우린 멸망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 주님 예수님은 모든 율법의 편견과 율법의 참소를 깨고 저와 여러분에게 오셔야만 했습니다.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나의 편견을 넘어 찾아 가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서로의 마음을 살피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생명이신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예수님이 그토록 배척하는 땅 사마리아를 통과하시기 위해 가실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무도 거절하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사마리아 땅으로 동행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문화적으로 배척하는 땅이라 해도 말 없이 따라 갔습니다. 비난받을 각오를 하고 예수님과 같이 그 길을 따라 간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십자가 지는 것입니다(눅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Then Jesus said to all the people/ If any of you want to be my followers, you must forget about yourself. You must take up your cross each day and follow me). 이제 우리가 해야 합니다.
2. 예수님이 여자에게 물을 달라 하시니까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인데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합니까? 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나를 누구인 줄 알았다면 오히려 (생수)를 구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9-10절
생수의 개념을 아직 여자는 모릅니다. 그릇도 없고 우물이 깊은데 어떻게 물을 주겠냐는 것입니다. ‘주여’라고 하는 것은 이 시대의 남자를 높이는 말입니다. 여자는 우리는 야곱의 후손으로 야곱이 요셉에게 준 땅에서 살며 그 우물로 온 동네 사람들이 먹고 짐승들도 마시기 때문에 야곱은 우리에게 특별한 조상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멸시를 받고는 있지만, 야곱의 후손이라는 긍지를 갖고 있어서 그들이 버틸 수 있는 근거도 됩니다. 사마리아에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근거는 야곱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이 우물을 준 야곱보다 당신이 더 크냐고 묻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야곱의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겠지만, 예수님이 주는 물은 한 번 마신다면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우물이 의미하는 것은 재물, 명예, 인간의 헛된 욕구로는 인간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수는 성령께서 끝까지 책임지는 성령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확정된 영생을 끝까지 안전하게 책임진다는 의미가 솟아나는 생수라는 것입니다. 영생은 현재적 선물이지만 영생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도록 계속 솟아나는 것처럼, 성령이 계속 나를 돌보고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